고인의 이름 앞에 ‘무연고 사망자’라는 수식이 붙는 순간 사람들은 그의 삶이 외롭고 쓸쓸했다고 오해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식이 내포하는 뜻이 ‘아무런 연고가 없음’이니까. 이 단어는 매우 직관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고인의 삶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그를 대표하게 된다. 개인의 역사를 지우고, 혼자로 만들어버린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통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렇게 고인들을 오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해는 질문을 부른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러봤자 누가 오는데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먼저 ‘무연고 사망자’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연고 사망자’는 크게 세 가지로 정의된다.
1. 연고자가 없거나,
2.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3.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다.
앞선 두 가지, 즉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에 명시되어 있는 법조문이고,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는 보건복지부 지침에 명시되어 있는 정의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은 보건복지부 지침인 세 번째 경우에 의아함을 느낀다. ‘무연고 사망자인데 가족이 있다고?’ 그렇다. 가족이 있어도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경우가 전체 무연고 사망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세상에 혼자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와 연결된 채였고, 설령 그 연결이 끊어지더라도 필연적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무연고 사망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겐 혈연이 있었고, 살아가면서 맺은 혈연 외의 인연도 있었다. 무연고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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