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prise Me!

'동족상잔 싫다'…공산군 징집 피해 달아났다 결국 전쟁터로

2023-07-26 1 Dailymotion

'동족상잔 싫다'…공산군 징집 피해 달아났다 결국 전쟁터로

[앵커]

6·25 전쟁 당시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지만 결국 유엔군으로 참전한 한 북한 주민이 있었습니다.

이 한국인은 전쟁 후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간 뒤 끝내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는데요.

그 사연을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빛나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기자]

황해도 해주의 대학에 다니는 의학도였던 채영호씨는 6·25 전쟁이 터지자 북녘의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숨었습니다.

공산군의 징집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등진 겁니다.

지난해 갑자기 쓰러져 고인이 된 채씨는 생전에 쓴 기록물에서 "내가 전방에 간다면 나는 내 조국이 아닌 강대국들의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될 것이 분명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남편은) 같은 민족끼리 전쟁하는 걸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때 북쪽은 중국, 러시아 공산당에 의해서 사로 잡혔고, 남쪽은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잖아요."

그러나 동족상잔의 비극은 결국 채씨를 전쟁터로 불러들였습니다.

도주한 청년들을 잡으려는 공산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채씨는 무작정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도착한 곳은 38선 이남.

처음엔 간첩으로 의심받아 수감됐다가 부족한 병력 충원을 위해 풀려난 채씨는 영어, 일본어에 능통했던 덕분에 벨기에 부대에 통역요원으로 배치돼 전쟁을 치렀습니다.

정전 후 채씨는 조국을 등졌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남한이나 북한 대신 벨기에행을 택한 겁니다.

채씨는 먼 타지에서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고, 가정도 꾸려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두 번 다시 밟지 못하게 된 고향은 평생 그리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애타게 그리워했던 어머니에 대한 소식도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매우 부잣집에 가부장적인 가정의 아들이었는데,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공산주의자들이 앗아갔고 남은 게 없는거죠."

채영호 씨는 생전 스스로를 동족상잔의 희생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족은 고인이 남긴 수백장의 자서전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브뤼셀에서 연합뉴스 정빛나입니다.

#한국전쟁 #6·25 #참전용사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끝)